
|
나의 추억,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
학창시절 큰 난로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노란 철제도시락. 어느 날 같은 반 아이가 가져온 ‘보온도시락’ 을 보곤 슬그머니 책상 안으로 숨겨버렸다.
국자 위의 설탕을 살살 녹여 만든 ‘달고나’ 에 입안 가득 행복이 번지곤 했다. 갖가지 모양으로 더 달달해진 사탕을 맘껏 사먹게 되기 전까진. 동네 아이들과 공책을 뜯어 만든 딱지로 날 새는 줄 모르고 놀았던 아이는, 전자 오락기가 생기면서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어느새 흰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어버린 그 아이는 지금 까마득히 사라져간 그 철제도시락이, 그 달고나가, 그 딱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TV 속 형광 빛의 컬러스타킹과 원색 원피스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 70년대를 배경으로 고고클럽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며 그는, 그 때 그 시절의 낭만을 곱씹는다. 그리곤 아련한 옛 기억 속으로의 ‘추억여행’ 을 시작한다.
<추억 하나> 옛 이야기 들려주는 추억의 LP카페 ‘세월이 가면’
|
안양예술공원 내 LP음악다방인 ‘세월이 가면’ . 영화 ‘여고시절’ 의 빛바랜 포스터와 줄이 끊긴 통기타, 낡다 못해 아예 헐어버린 교복들, 네모난 책가방 등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60~70년대 옛 다방 같은 실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돌연 말을 멈추고 실내 한 켠을 주시한다.
“가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날리는 오후. 안녕하세요. ‘세월이 가면’ 의 DJ 전주일입니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DJ가 레코드판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뮤직박스 부스에 올라앉았다. 낡은 LP판 턴테이블이 돌아가면서 60~70년대 유행했던 존 레논의 ‘Imagine’ 이 카페 가득 울려 퍼진다.
마치 우리 기쁜 ‘청춘시대’ 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들로부터 감탄사가 추임새처럼 흘러나온다. DJ는 한국디제이협회 회장을 역임 한 전주일 씨. 한 평생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낙’ 으로 알고 살았던 그다.
|
|
신청곡 쪽지에는 참으로 많은 사연들이 그려져 있었다. 오래 전 음악을 들으니 어렸을 적 많이도 괴롭혔던 코흘리개 친구가 보고 싶다는 사연에서부터, 첫사랑에게 프로포즈를 받으면서 함께 들었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여고시절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는 사연 등 갖가지 추억들이 ‘세월이 가면’ 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들어준다. 부슬부슬 가을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비가 내리는 오후, 갈 길을 멈추곤 감미로운 음악 속에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 사연으로 남겨본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시계쳇바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옛 추억을 생각하며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길 바래본다.
<추억 둘> ‘추억의 옛 친구들’ 한데 모인 ‘토토의 오래된 물건’
|
|
언뜻 보기엔 그저 쓸모없는 잡동사니인 듯 하지만, 그 시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아련하게 곱씹는 ‘추억’ 의 상징들이다.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구워먹었던 쫀드기, 아폴로 등 이른바 불량식품으로 치부되었던 추억의 먹을거리 등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특이하게도 추억을 좇아 들어온 흰머리 지긋한 어른들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나이 어린 학생들로 가게가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추억’ 이란 그런 것이다. 범상한 물건도 추억이 더해지면 누군가에겐 ‘낭만’ 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추억’ 으로 아로새겨진다는 것. 비록 배고프고 가슴 아팠던 과거의 기억이라 할지라도, 그마저도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된다.
<추억 셋> 빛바랜 정겨움 가득한 단관극장 … 추억을 파는 극장 ‘드림시네마’
|
손으로 그린 그림 간판, 뭘 볼까 고민할 필요 없는 단관, 2000원이면 오징어와 땅콩을 살 수 있는 곳, ‘추억을 파는 극장’ 으로 명명된 서대문구 드림시네마(전 화양극장)를 이르는 말들이다.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구식 영사기, 760개의 좌석, 소박하다 못해 허름한 매표소, 낡은 소파 등 추억이 담뿍 서려있는 전형적인 옛날 극장의 분위기. 사실 드림시네마는 멀티플렉스 공세에 밀려 몇 번이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하면서 가까스로 극장을 지켜내고 있다.
|
최근에는 한국영화인 ‘고교얄개’ 의 주인공들과 함께 시사회를 하는가 하면, 외화로는 미션을 개봉해 영화 속 배경지인 파라과이 대사까지 초청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전 세계 10대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청춘영화 ‘더티댄싱’ 을 재개봉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
극장로비에는 80년대 사용하던 영사기와 청계천, 황학동 등에서 직접 수집한 추억의 영화 사운드트랙 LP판을 전시하고, 관객들에게 직접 들려주며 과거여행에 흥을 돋운다. 또한 작년에 개봉한 주윤발, 장국영 주연의 추억의 홍콩영화 ‘영웅본색 1’ 편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영웅본색2’ 가 낙원동의 허리우드 클래식에서 동시 상영될 예정이다. 일명 바바리코트(트렌치코트)를 입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허나 이 극장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돼 머지않아
문을 닫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추억의 멜로디가 귓가를 간질이는 단관극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그 아련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추억 넷> 수줍게 사랑 나누던 옛 다방,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다방’
|
소위 잘 나간다는(?) 젊은 청춘들이 모이는 홍대. 홍대 주차장 쪽으로 가다보면 ‘홍대스러움’ 하고는 살짝 이질적인 이름의 간판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다방’ 이다. 전형적인 촌스러움이기보다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복고풍이 가미된 듯한 인상의 내부. 다방에는 실제 DJ는 없지만 레코드판이 빽빽이 꽂힌 뮤직박스와 ‘화랑’ 이라 이름 적인 옛 성냥갑, 다방 하면 생각나는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 등 60~70년대의 향수를 자아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악다방에 앉아 희망곡을 신청하면서 아름다운 얘기를 나누던 그 때 그 시절인 듯 아련한 감흥에 젖을 수 있다.
|
복고열풍에 걸맞게 최근 홍대에는 LP레코드로 음악을 들려주는 카페가 많아졌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 , 최근에 새로 생긴 ‘라디오스타’ 등이 그것이다. 신촌의 만화전문서점 ‘리브로코믹(02-312-6969)’ 에서는 어린 시절 보았던 구하기도 힘든 만화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둘리에서부터 지구를 지키는 아톰 등 세월이 흘러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만화들을 따로 모아둔 코너도 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는 제목의 고정희 시인의 유고 시집이 있다. 현재 존재하는 것들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과거가 된다. 우리는 또 그 과거를 그리워할 것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훗날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에.
<여행 즐기기>
◇ 인사동 ‘토토의 오래된 물건’ 가는 방법
종각 역 인사동 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인사동 골목길 중간쯤 건물 2층에 위치. 입장료는 1000원이다.
◇ 안양 ‘세월이 가면’ 가는 방법
안양예술공원 내 인공폭포 앞 150m 정도 거리에 2층 에 자리하고 있다. 문의는 031-472-7080.
◇ 드림시네마 가는 방법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8번 출구. 자가 이용시는 서대문역 서울역 방향 서대문 로터리에 위치. 영화관 문의는 02-362-3149.
◇ 홍대 ‘몽마르뜨 언덕 위 은하수 다방’ 가는 방법
홍대역 주차장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02-332-0248로 문의하면 된다.
-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온라인마케팅팀 손은덕 취재기자(tossong@naver.com)